오늘은 지난 글에서 설명드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에 이어 중세유럽의 도시유형과 도시의 변천과정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25.10.28 - [분류 전체보기] - 서양 도시의 기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
서양 도시의 기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
2025.10.28 - [분류 전체보기] -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최초 건설된 도시들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최초 건설된 도시들이번 글에서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그 주변에 생겨난 최초의 도시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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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도시 (5세기 ~ 11세기)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중세라는 긴 터널로 진입한다.
5세기초 게르만족이 침입하면서 중서 유럽에는 여러 게르만 왕국들이 군웅할거하게 된다.
전쟁이 빈번했고 사람들은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로 ‘봉건장원’이 등장하는데 왕이 큰 권력으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은 기사는 영주가 되어 성을 쌓고 그 안에 거주하는데 농민들은 그 성에 의탁하게 된다.
이렇게 왕이 토지를 하사하는 것을 봉토(封土)라 하는데 이러한 봉건제도는 왕이 넓은 토지를 혼자 다스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현실에 기반하여 영주는 조세징수권을 갖는 대신 전시에 왕을 위해 종군의무를 갖는 일종의 계약관계로 출발하게 된다.
영주 역시 농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농민들은 영주에게 생산의 일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종의 계약관계를 맺게 된다.
최초의 관계는 이러한 호혜적 계약관계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점차 귀족이 농민으로부터 과다한 세금을 걷고 노역을 부과하면 전쟁에 동원하는 일방적인 주종관계로 진하하게 된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귀족과 농노(Peasant)의 관계로 굳어지고, 이러한 관계는 근세, 인클로저운동(Enclosure Movement)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거의 전유럽이 영주의 지배력이 미치는 장원체제로 재편되면서, 이전 그레코로만 문명의 도시생활은 붕괴되고 도시 태동 이전의 전원(田園)공동체가 재출현하게 된다. 장원체제는 물리적으로 성곽에 의해 지지되었으며, 단위 장원 내의 자족경제로 후퇴하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외의 문화적 측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부 자유시(Free City)에는 좀 더 많은 자유와 다양성이 보장되었다. 당시에는 농노가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 자유시에 1년간 머무를 수 있으면 시민권을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자유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단순히 성내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이던 ‘부르주아(Bourgeois)’가 ‘자본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중세도 느리게나마 도시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로마로 통하는 도로의 소실로 인한 이전의 도시문명이 쇠퇴하면서 서기 천년까지 유럽은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서기 천년 경부터 숲이 줄어들고 인구가 40%나 늘었다고 한다.
유랑하던 게르만족이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인구가 늘고 토지를 개간하기 위해 숲이 파괴되었다.
중세 유럽의 도시 (11세기 ~ 14세기)
11세기까지의 이러한 과정에서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많은 중세도시들이 등장하게 되고, 중세 도시는 ‘상인의 발자국’이라는 표현처럼, 모두가 농사를 짓는 환경에서 일부 상업활동이 이루어지던 결절지역(Nodal point)에 형성되었다.
자유시는 이러한 것에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영주가 백성들을 물리적으로 보호(지배)했다면, 교회는 그들을 영적으로 보호(지배)했다.
교회는 사람들이 빈번한 전쟁과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딜수 있도록 구원과 영행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보편적인’이라는 의미의 카톨릭(Catholic)은 사실 정통 기독교 교리와 게르만의 토속신앙이 결합된 종교로 볼 수 있다. 성모(聖母)신앙이나 성성(Icon), 성인(聖人) 숭배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아고라와 포룸의 전통이 중세에 교회 앞 광장으로 이어졌다.

13세기경 서구에는 많은 정주지가 있었지만 5천명 이상 인구를 가진 곳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천명 이하의 규모였다. 성곽의 규모, 물 공급이나 위생문제로 인해 1mile2 이상 규모를 갖는 도시는 거의 없었다. 규모가 작았지만 인구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환경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전염병이 자주 일어났지만 쥐에 의해 전염되는 페스트가 대부분이었고, 위생문제로 발생하는 수인성 전염병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었다. 유럽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리안느(마리아)상은 알 수 없는 재앙(페스트)앞에서 신의 자비에 매달리는 중세인의 무력함을 잘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일부 대도시가 출현했는데 북부 이탈리아, 북부 독일, 북해 연안의 저지대 지역에서 1만명 이상의 대도시들이 출현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발흥하였으며, 북부 독일 지역에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도시들이 결성되었다. 파리는 세계 무역중심으로 14세기 인구가 24만명에 이르렀고 비잔틴무역의 중심인 베니스의 인구는 20만명에 이르렀고, 르네상스의 중심인 피렌체는 9만명에 달했다.

중세에는 직주일체가 일반적이었는데, 하층 서민들은 통상 성밖에 거주했다. 이탈리아 대상인들의 저택을 ‘팔라초(Palazzo)라고 불렀는데, 대상인들은 위세의 과시 외에도 대저택을 지었다. 평범한 외관의 중소상인 주택은 시장광장에서 떨어져 좁은 가로나 골목길에 위치했는데, 작업장과 살림집을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까지 중세 유럽의 도시 변천과정을 알아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14세기 ~ 19세기에 이르는 중세 유럽 도시(르네상스와 바로크 도시)에 대해 준비해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구독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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