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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계획(Urban Plan)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도시

by 도시정비CMer 2025. 11. 4.

 지난 글(아래 링크참조)에서 중세 유럽의 도시 변천 (5세기 ~ 14세기) 과정을 알아봤고, 이번 글에서는 14세기 ~ 19세기에 이르는 중세 유럽 도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2025.10.30 - [분류 전체보기] - 중세 유럽의 도시 유형과 변천 과정

 

중세 유럽의 도시 유형과 변천 과정

오늘은 지난 글에서 설명드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에 이어 중세유럽의 도시유형과 도시의 변천과정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25.10.28 - [분류 전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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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14세기 ~ 16세기 유럽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프랑스어로 부활 혹은 재탄생을 의미하는데 중세의 신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고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활이 일어난 시기가 르네상스 시대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신대륙이 발견되었으며 종교개혁과 그에 따른 전쟁이 대륙을 휩쓸었다. 르네상스는 북이탈리아 도시에서 발흥했는데, 말 그대로 문예부흥으로 번역할 수 있다. 문예란 문화와 예술을 의미하는데 뭔가 위축되었던 과거의 문화예술이 다시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당시 유럽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자연과학의 발달, 신대륙의 발견으로 중세의 신()중심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균열과 틈새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과거의 화려했던 문화, 문명에 대한 회로고서 르네상스이다.

십자군 전쟁 이후 동방과의 교류가 확대되었고, 부유한 계층(메디치 가문 등)이 예술을 후원하여 상업과 도시가 발달할 수 있었다. 이시대의 대표적 인물로 미술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페엘로 가 있었고 과학으로는 코페르니쿠스(지동설 주장), 이외에도 문학으로 단테, 보카치오, 세익스피어 등이 있다.

건축적으로 중세를 지배한 양식은 고딕(Gothic)양식이었는데, 고딕은 고트족(Goths)의 양식이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게르만적인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에서는 중세에 보기 어려웠던 박공(Garble)지붕과 열주(Colonnade), (Dome), 아케이드(Arcade) 등 그리스, 로마 양식이 재출현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르 고전주의(Classicism)라 하며, 17세기 바로크(Baroque)를 거쳐 18세기에 다시 등장한 이러한 양식을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로 지칭한다.

고딕 양식의 뮌헨 대성당
고딕 양식의 뮌헨 대성당

고전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조화와 균형, 비례와 대칭, 질서와 단정함, 절제와 엄격함으로 설명된다. 예술적 측면이 강했던 당시에 많이 그려졌던 이상도시(Ideal city)’의 상상화가 도시계획으로 고려되지만 실현된 것이 거의 없다.

르네상스 이상도시는 본질적으로 신과 왕 그리고 귀족의 권위, 영광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중세의 도시가 온전히 신에게 바쳐진 것이었다면, 르네상스의 도시는 세속의 권력자들로 그 범위가 다소 넓혀진 것이 다를 뿐이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특징이 강조되었고 권위가 집중되는 광장의 중심(Focal point)과 투시도법이 중요한 계획요소로서 활용되었는데, 광장 중앙에 위치한 상징조형물과 방사형 가로체계는 이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이상도시
이상도시  (Luciano Laurana 의 작품으로 추정 )

당시 실현된 몇 안되는 도시설계의 예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톨이오 광장이 있다. 낮은 언덕에 조성된 소품이지만 균형과 대칭, 광장 모퉁이에서 중심으로 시점(視點)이 모이도록 하는 르네상스적 도시설계의 특징이 잘 실현된 예이다.

캄피톨리오 광장 (미켈란젤로 스케치)
캄피돌리오 광장 스케치  (Piazza del Campidoglio, 1568)

바로크 시대

바로크(Baroque)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의 조화롭고 이성적인 미학에서 발전해서 '감정과 극적 표현'을 강조한 시대이다. 복잡하고 화려하며 감각적인 양식을 의미하며 건축적으로 바로크는 17~18세기경 르네상스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했다.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졌으며 굴곡과 곡선의 활용이 두드러졌다. 문화적 중심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동이 이루어졌다. 이즈음 절대왕권의 강화와 중상주의에 기초한 부의 축적으로 르네상스 기에는 상상밖에 할 수 없었던 이상도시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베르사이유 궁 동측 시가지
베르사이유 궁 동측 시가지

왕의 영광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중심에서 뻗어 나가는 방사형 광로를 만들었고 중심가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광장, 공원과 같은 장중한 공공 공간과 왕궁, 시청, 교회 등 상징적 건물을 배치했다가로변에는 가로수를 심어서 녹지축을 확실히 조성했다.

바로크 시대에는 종교개혁(루터, 칼뱅 등) 이후 카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 운동이 활발하였고, 교회는  신앙심 회복을 위해 강렬하고 감동적 예술을 장려하였으며, 절대 왕정의 등장(프랑스 루이 14세 등)으로 왕권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는 예술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미술의 카라바조,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와 건축으로는 베르니니, 보로미니와 같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등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 확립되었다. 르네상스의 중심가치와 예술 특징으로는 인간중심(인문주의)의 균형, 조화, 이성이라면 바로크는 감정, 신앙, 권력표현 이며 역동성과 명암으로 대비될 수 있다. 17~19세기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로마와 파리, 워싱턴D.C. 등 대도시들이 앞다투어 개조, 건설되었다.

 

지금까지 중세유럽의 도시 변천과정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산업혁명과 도시화에 대해 준비하겠습니다. 구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