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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계획(Urban Plan)

서양 도시의 기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

by 도시정비CMer 2025. 10. 29.

2025.10.28 - [분류 전체보기] -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최초 건설된 도시들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최초 건설된 도시들

이번 글에서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와 그 주변에 생겨난 최초의 도시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주변의 메소포타미아문명, 나일강 주변의 이

dosidasi.com

이전 글(위 링크 참조)에 이어 고대 서양도시에 대한 기록의 내용을 이어가려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서양도시의 원형, 그리스의 도시들은 BC7~ 8세기경(BC600~700년경) 발칸반도 남단에서 등장한다.

  • 그리스 도시, 아크로폴리스 (귀족과 성(聖)의 공간) =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왕의 전쟁여부를 묻는 공간인 "신탁"은 높은 산에 위치한 신의 공간이었다.
  • 아고라(agora), ‘모이다’(평민과 세속의 공간)  = 아고라는 매우 무질서한 공간, 자유분방한 개방성(서구 민주주의의 뿌리), 그리스 문명을 계승한 로마에서 포룸(Forum)으로 발전하여 오늘날의 광장으로 정형화 되었다.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그리스 식민도시의 특징은 구릉지에 건설된 본국의 도시와 달리 식민지의 경우 평지에 건설된 아고라만 있다는 것이다.

B.C 146년 마케도니아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면서 그리스 헬레니즘 문명은 로마문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 로마 문명을 합쳐서 그레코로만(Greco-Roman)문명으로 부른다.

그리스의 아고라가 특정시설 없이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조성된 공간이라면, 로마의 포룸은 초기 아고라에서 이후 지중해 전역으로 문명이 확장되어 오늘날의 광장처럼 도심속 정형화된 오픈스페이스로 자리잡게 되었다.

로마의 도시

로마는 서기100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시절 인구100만명에 달하는 거대도시였으며, 면적은 12~20㎢ 로 엄청난 과밀상태였다.  

로마주택 6만호, 대저택 1,709, 공원30개소, 도서관 28개소, 공중목욕탕 1,000개소, 1,200개소의 공공분수(로마는 물의 도시였음), 250개소의 저수지 ... 초과밀 상태로 개발부지가 없었지만 황제들은 자신의 권위와 인기를 위해 앞다투어 대형건축물을 지었다. 서기 75년 베스파시아누스황제가 건설한 원형경기장(콜로세움, Colosseum)45,000개의 관람석과 5천개의 입석을 지닌 거대 건축물로 유명하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현재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도무스는 대략 1,600㎡ 규모로 중정과 연못을 보유한 호화 단독주택이었으며, 서민들은 인슐라(Insula)라고 하는 아파트에 거주했는데, 인슐라는 귀족들이 투기목적으로 지은 부실주택으로 통상 6~7층 규모로 10층까지 짓기도 했다.

도무스(Domus)
이미지출처  http://blog.daum.net/ilgun001/15993889

  한 동당 200명 정도가 거주했으나 대부분 목조건물로 환기의 문제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 사람들은 집보다 포룸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워낙 날림으로 지어져서 내력이 약한탓에 붕괴사고가 잦았고, 화재에 취약하여 결국 로마 대화재로 이어지게 되었다. 네로황제는 6일이상 지속된 화재에 발빠르게 대응했고, 도시재생을 위해 새로운 율령의 반포를 통해 보다 정돈되고 화재에 강한 도시로 재생시키고자 했다.

 

고대 로마의 공회장(Forum romanum)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종교생활의 중심이었다. 공회장에서 가장 큰 건물은 법정으로 사용됐던 바실리카였다. 극작가 플라우투스가 이곳을 가리켜 "법관, 소송 당사자, 변호인, 상인, 환전상, 매춘부, 부자에게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로 꽉 차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대 로마 시민의 활동 중심지였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왕정, 공화정, 제정시대를 통틀어 로마제국의 부와 영화를 자랑하던 포룸 로마눔에 서면 한 시대를 주름 잡았던 로마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율리우스 시저(+기원전 44년)의 신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년 다스림)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193-211년 다스림)의 개선문, 에밀리아 회당(Basilica Aemilia), 티투스 황제(79-81년 다스림)의 개선문, 네로(54-68년 다스림)의 왕궁(Domus Aurea),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9-기원후 14년 다스림)의 공회장,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다스림)의 공회장을 들 수 있다.

 

도무스에 거주하는 부유층들은 개인욕실과 연못을 운영하기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줘야했고, 인슐라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물을 사거나 분수에서 물을 길어서 들고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쓰고 난 물이나 오물가지 들고 내려갈수 없어 오수를 창밖으로 마구 버렸고, 거리가 온통 오물천지가 되었으며, 이렇게 오물을 거리에 뿌리는 관행은 근대 프랑스에 까지 이어진다.

인슐라 (Insula)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ilgun001/15993889

로마는 탁월한 토목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도시내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여 다수의 공중 목욕탕이나 분수를 운영할 수 있었으나 상하수도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탓에 주택 내부까지 물을 공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로마의 공중목욕탕 (카라칼라)유적지
로마의 공중목욕탕, 카라칼라 대중목욕탕 유적지  (2,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다 .)

황제의 목욕탕은 면적이 26,500㎡ ~ 37,500㎡ 규모에 달해 한번에 1,600~ 3,000명까지 입장했다고 하는데 참고로 잠실야구장 면적이 26,331㎡인 것을 비교하면 그 규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성기 로마제국의 영토는 동으로 메소포타미아, 서로는 히스파니아(이베리아 반도), 남으로는 북아프리카, 북으로는 브리타니아(영국)에 이르렀는데 로마인들은 정복지에 로마의 질서와 권위를 과시하기위해 카스트라(Castra)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했는데, 본토의 자연발생적 도시와 달리 마스터플랜에 의해 만들어진 정형화된 도시이다.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뛰어난 토목기술을 바탕으로 BC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이에 필적할만한 사업이 없을 정도로 로마의 도로건설은 위용과 힘을 미친다. 로마의 도로는 완벽하게 포장한 1급도로와 자갈만 깔린 2급도로로 구분하는데 포장된 것만 8Km, 총연장이 40Km에 이르렀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도로의 골간은 모두 로마에 의해 건설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고대 서양 도시에 대해 살펴봤고, 다음시간에는 중세유럽의 도시에 대해 준비하겠습니다.~  구독!! 감사합니다.